사진의 현재적 의미에 대하여: 이현우의 작품세계에 대한 소고
장나윤(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이현우는 인공과 자연, 가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 등 여러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것이 자아내는 특유의 감각을 사진으로 포착하는 작업들을 발표해 왔다. 그는 이 같은 물리적, 관념적 경계의 모호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 참신한 시각적 실험들을 시도해 왔는데, 그 기저에는 오늘날의 기술 조건 및 시각 환경의 맥락 속 사진 매체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담겨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Solid Reflections: Louise Nevelson〉(2022), 〈Solid Reflections〉(2023~) 또한 이 같은 탐구와 실험을 토대로 한 작품으로, 특히 후자의 경우 인공지능 플랫폼을 이용하여 만든 생성 이미지를 활용하여 완성한 사진 작품이다. 이는 사진 매체에 대한 작가의 실험이 꾸준히 진화를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들 모두 조금씩 다른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고, 작품마다 새로운 작업 방식들이 시도되었으나, 이현우의 작품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빛이 작용하는 시공간, 그리고 그것을 지각하는 경험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이다. 이 글에서는 〈Solid Reflections: Louise Nevelson〉을 중심으로 이 같은 이현우의 작품세계에 대한 소고를 간략하게나마 밝히고자 한다.
사진의 빛과 ‘축적된 이미지’
〈Solid Reflections: Louise Nevelson〉은 루이스 네벨슨(Louise Nevelson, 1899-1988)의 조각 〈Federation Sculpture Edition E〉(1981)을 사진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빙햄턴 뉴욕 주립대학교와의 협업으로 기획된 이 작업은, 먼저 네벨슨의 조각 작품을 촬영한 사진을 빙햄턴 대학교 미술관 측으로부터 전달받은 후 이를 토대로 새로운 사진 작품을 만든 것이다. 작품은 미술관에서 제공한 사진에 담긴 빛과 그림자를 빔프로젝터의 빛으로 환원하고, 그것을 직접 제작한 입방체 위에 투사한 후, 이를 다시 사진으로 담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다. 이처럼 조각에서 사진으로, 다시 새로운 사진으로 차원과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 과정은 사진 매체에 대한 심도 깊은 탐구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진중한 작업 태도를 잘 보여준다.
작품에는 검은 배경 앞에 놓인 조각 작품이 움직이며 만들어낸 잔상이 담겨있는데, 이는 15분간으로 설정된 긴 셔터 시간 동안 빔프로젝터를 통해 투사된 이미지와 입방체의 배치가 조금씩 변하였기 때문이다. 큐비즘과 러시아 구축주의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네벨슨의 추상적인 조각 작품, 사진 속 잔상으로 포착된 움직임이 담지하는 시간성과 공간성, 그리고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재해석된 빛은 필연적으로 라즐로 모홀리나기(László Moholy-Nagy)의 〈빛-공간 변조기(Light-Space Modulator)〉(1922–1930)와 그것을 촬영한 일련의 사진들을 떠올리게 한다. 헝가리 출신의 예술가이자 바우하우스의 교수였던 모홀리나기는 예술과 기술 간의 관계를 면밀히 탐구하여 이를 통한 새로운 예술 생산의 가능성을 실험하였으며, 사진이 단순히 ‘기계적인 기록의 과정(a mechanical process of recording)’이 아닌 ‘창조의 수단(means of creation)’이며, 나아가 현대사회를 지각하는 데 있어 기초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1 그는 빛에 대해 꾸준히 탐구하였는데, 특히 카메라 없는 사진 이미지인 포토그램(photogram)을 통해 ‘회화의 색과 음악의 소리와 같이’ 빛이 새로운 창조적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닌다는 점을 역설하였다.2 최초의 전기 동력 키네틱 조각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빛-공간 변조기〉 또한 빛에 대한 그의 관심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작품은 동력에 의해 스스로 회전하는 기계 장치 및 그것을 비추는 조명과 배경으로 구성되었으며, 조각의 움직임과 빛의 상호작용에 따라 변화하는 흥미로운 시각 효과를 제시했다.
모홀리나기가 빛과 공간, 움직임에 집중하여 관람자의 지각 경험을 실험하였듯이, 이현우는 현재의 기술 조건 가운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공간’, 그리고 ‘빛을 매개하여 투사되는 평면 이미지’ 간의 상호작용에 주목하였다.3 두 작가의 작품이 서로 다른 역사적, 기술적 맥락 가운데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게 되는 것은, 단순히 작품들 간의 시각적 연관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현우의 작품은 모홀리나기가 백여 년 전 〈빛-공간 변조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듯이 빛과 공간이 단순히 관념적인 작업의 재료가 아니며, 지각 경험을 통해 인식될 수 있는 실재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실제로 움직이는 기계를 이용한 모홀리나기의 작품과 달리, 〈Solid Reflections: Louise Nevelson〉은 빛의 매체 간 이동, 그리고 빛과 공간의 상호작용 과정을 기록한 ‘축적된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시간성을 드러내며, 이로써 사진을 통한 지각 실험의 가능성을 한 걸음 더 밀고 나간다.4
나가는 말
이처럼 이현우의 작품은 ‘축적된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대상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한편, 그것을 지각하는 경험의 과정성과 비고정성을 드러낸다. 사진을 통한 동태성과 지각 경험 탐구의 역사적 의미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래주의자들이 소개하였던 포토다이너미즘(photodynamism)의 경향, 그리고 그들이 참고하였던 에티엔느-쥘 마레(Etienne-Jules Marey)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James Muybridge)의 사진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짧은 지면에서 이들의 예술 실천들에 대해 상세히 검토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들이 궁극적으로는 기술을 통해 예술과 삶 간의 경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는 점은 이현우의 사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현우의 작품은 빛과 시공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지각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도들을 보여준다. 이는 결국 모홀리나기와 미래주의자들이 그러하였듯 급변하는 기술 및 이미지 환경의 맥락 가운데 사진, 나아가 예술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 한편, 그것의 가능성을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이 같은 그의 노력은 삶과 예술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질문들에 닿아있다. 그의 다음 작품 여정을 더욱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처럼 그의 작품이 본질적인 가치 탐구의 토대 위에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László Moholy-Nagy, Malerei, Photographie, Film (Munich: Albert Langen, 1925), 5. Pepper Stetler, “‘The New Visual Literature’: László Moholy-Nagy’s Painting, Photography, Film,” Grey Room 32 (2008): 89에서 재인용. ↩︎
- László Moholy-Nagy, “Photography without a Camera: The ‘Photogram,’” in Painting, Photography, Film, trans. Janet Seligman (London: Lund Humphries, 1969), 32. ↩︎
- 이현우 포트폴리오 (2024), n.p. ↩︎
- ‘축적된 이미지’는 작가가 사용한 표현이다. 이현우 포트폴리오 (2024), n.p. ↩︎